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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계승전쟁/주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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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의 성격 변화 === '''화력의 비대칭이 만든 변화''' 계승전쟁의 전투 양상은 시간이 갈수록 '''비대칭'''해졌다. 개전 초에는 양측 모두 유사한 무장과 교리를 가졌으나, 1883년 후반부터 의회군의 화력이 급격히 증가한 반면 왕당파는 소모를 보충하지 못했다. 이 격차는 전술의 선택지를 바꾸었다. 1884년 이후 왕당파는 '''사격 자체를 아껴야 하는 상태'''에 놓였고, 이는 방어 전술의 근간을 흔들었다. 당시 교리에서 방어의 핵심은 접근하는 적에게 지속적인 화력을 퍼붓는 것이었는데, 왕당파는 그럴 수 없었으므로 최후 순간까지 사격을 참았다가 짧게 집중하는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야전 축성의 비중 증가''' 1877년 [[플레브나 공방]]에서 참호에 의지한 방어 측이 정면 돌격을 반복 격퇴한 이래, 유럽 각국 군대는 야전 축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다만 이 교훈이 실제로 반영된 것은 방어 교리뿐이었고, 공격 교리는 여전히 정면 돌격을 상정하고 있었다. 계승전쟁은 이 불균형이 그대로 드러난 전쟁이었다. 왕당파는 로마 시대 [[루이나 방벽]] 유적을 기초로 참호와 흉벽을 구축했고, 남부 고지 출신 석공이 많았던 덕에 축성의 질도 높았다. 반면 의회군은 이를 돌파할 방법으로 화력 집중과 정면 공격 외의 선택지를 갖지 못했으며, 그 결과 [[테른 고개 전투]]에서 큰 사상자를 냈다. '''갱도 작업의 재등장''' 돌파가 어려워지자 의회군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갔다. 지하로 파고 들어가 폭약을 설치하는 '''갱도 작업'''이 [[스톤게이트 관문 공방]]과 [[카엘몬트 성 공방]] 양쪽에서 사용되었으며, 두 경우 모두 정면 공격이 좌절된 뒤에 채택되었다. 이는 계승전쟁의 특징적 대목으로 꼽힌다. 근대적 화력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근세 이전의 공성 기술이 해결한 셈이기 때문이다. '''기병의 역할''' 기병의 충격 돌격은 이 전쟁에서 한 차례도 성공하지 않았다. 후장식 소총 앞에서 밀집 기병이 돌격하는 것은 이미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고, 양측 지휘관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 대신 기병은 '''정찰과 습격'''에 집중적으로 운용되었다. [[할브룩 습격]]이 대표적 사례로, 야간에 우회 산길을 통해 후방 보급 집적소를 친 이 작전은 병력 손실 없이 왕당파의 보급 사정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화기의 위치''' 기관포는 양측 모두 소량만 보유했고 야전 주력으로 쓰이지 않았다. 손잡이를 돌려 격발하는 다총신 방식이었으며 무게 때문에 이동이 어려웠으므로, 주로 고정 진지와 관문 방어에 배치되었다. 이 시기 유럽 각국 군대에서도 기관포의 야전 운용 교리는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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